죽전, 언덕과 신도시가 만나는 동네에서 어르신의 하루를 생각하다

한눈에 보기
오시는 길
- 죽전은 계획해서 만든 동네다. 논밭이 있던 자리에 택지를 닦고 아파트를 올린 곳이라, 골목이 …
- 주거의 뼈대는 대단지 아파트다. 여러 동이 한 묶음으로 서 있고 단지 안에 자체 보행로와 쉼터…
- 장을 보는 방식은 두 갈래로 나뉜다. 신세계백화점이 죽전의 대표적인 얼굴이라, 이곳 지하 식품…
오늘의 식사
프로그램
이용 안내
죽전은 계획해서 만든 동네다. 논밭이 있던 자리에 택지를 닦고 아파트를 올린 곳이라, 골목이 제멋대로 뻗은 구도심과는 결이 다르다. 길이 반듯하고 블록이 넓다. 처음 온 사람도 길을 잃지 않는다. 여기에 단국대가 들어오면서 대학가 특유의 젊은 공기가 한쪽에 얹혔다. 그래서 죽전을 한 단어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신도시의 정돈된 얼굴과 대학가의 들썩임이 한 동네 안에 나란히 있다. 어르신들에게는 이 성격이 양면으로 다가온다. 길이 넓고 표지가 분명하니 다니기가 수월한 반면, 오래 산 동네 특유의 얼굴 익은 관계는 옅은 편이다. 골목 어귀에서 인사 나누던 이웃 대신, 같은 동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이웃이 된다. 자식들이 직장 따라 자리 잡으면서 부모를 모셔온 경우도 적지 않아,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보다 나중에 옮겨온 어르신이 더 흔하다.
주거의 뼈대는 대단지 아파트다. 여러 동이 한 묶음으로 서 있고 단지 안에 자체 보행로와 쉼터가 갖춰져 있어, 어르신이 하루의 상당 부분을 단지 안에서 보낸다. 아침에 단지 안 벤치에 나와 앉아 있다가 점심때 들어가는 생활이 흔한 풍경이다. 다만 이 구조가 늘 편한 것만은 아니다. 단지가 크다 보니 동에서 정문까지 걸어 나오는 데만도 꽤 걸린다. 무릎이 성치 않은 어르신에게는 그 몇백 미터가 만만치 않은 거리다. 단지 사이사이에는 낮은 주택과 상가건물이 섞여 있고, 그런 곳에는 오래 눌러 사는 어르신이 많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하루의 큰 부담이 되는 집도 있다. 같은 죽전이라도 어느 단지, 어느 골목에 사느냐에 따라 어르신의 하루 반경이 확연히 달라진다.
장을 보는 방식은 두 갈래로 나뉜다. 신세계백화점이 죽전의 대표적인 얼굴이라, 이곳 지하 식품관에서 반찬거리를 사 오는 어르신이 있다. 실내가 평평하고 앉을 자리가 곳곳에 있으니 더운 날이나 추운 날에는 이만한 산책길이 없다. 며느리나 딸이 모시고 나와 한 바퀴 돌고 밥 한 끼 먹고 들어가는 코스로도 자주 쓰인다. 반대로 단지 상가에서 필요한 것만 사 오는 어르신도 많다. 멀리 나가는 게 힘드니 가까운 데서 해결하는 것이다. 죽전역 주변으로는 먹고 마시는 가게가 촘촘하고 저녁이면 사람이 몰린다. 젊은 사람 많은 시간대를 피해 아침나절에 나서는 어르신들의 리듬이 자연히 생겨났다.
죽전은 평지가 아니다. 대지고개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어서, 동네 곳곳에 오르내림이 있다. 아파트 단지 안은 대체로 완만하게 정리돼 있지만 단지를 벗어나 옆 동네로 넘어가려면 경사를 하나쯤은 만나게 된다. 젊은 사람 걸음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언덕이 어르신에게는 하루의 외출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짐을 들고 그 경사를 오르는 일은 특히 부담스럽다. 대신 계획적으로 조성된 동네답게 단지마다 공원과 산책로가 붙어 있어, 굳이 언덕을 넘지 않고도 걸을 자리는 있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오후를 보내는 어르신들이 늘 보인다. 이 언덕 지형은 겨울에 한 번 더 문제가 된다. 눈이나 얼음이 얼면 경사진 보도는 그대로 위험 구간이 된다.
죽전역이 이 동네 교통의 중심이다. 역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죽전을 다른 동네와 구별 짓는다. 서울 방향으로 나가는 자식이 부모를 보러 오기에도, 어르신이 병원이나 볼일 때문에 나서기에도 역만큼 편한 출발점이 없다. 버스는 죽전역과 신세계백화점 앞을 축으로 돌아 나가고, 단지 앞 정류장에서 타면 웬만한 데는 갈아타지 않고 닿는다. 다만 어르신에게는 정류장까지 걸어 나오는 그 구간이 진짜 관문이다. 자동차로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도로가 넓게 뚫려 있어 죽전 안에서의 이동은 대체로 수월한 편이다. 대지고개 쪽으로 넘어가는 길은 경사가 있어 겨울철에는 조심하게 되는 구간으로 통한다.
이런 지형과 길의 성격은 어르신이 낮에 오가는 방식에 그대로 영향을 준다. 죽전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는 가족들이 가장 먼저 따져보는 것도 결국 집 앞까지 차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인지다. 대단지 아파트는 단지 안 도로가 넓고 회차할 자리가 있어 차량이 드나들기에 무리가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동 앞까지 들어오더라도 어르신이 현관에서 차까지 나오는 짧은 거리에 계단이나 턱이 있으면 그 자체가 벽이 된다. 저층 주택이 몰린 골목은 사정이 더 까다롭다. 길이 좁고 경사까지 겹치면 큰 차가 들어서기 어렵고, 겨울에 얼면 걸어 나오는 것도 위험하다. 그래서 죽전 데이케어센터를 고를 때 거리보다 접근성을 먼저 보는 가족이 많다. 면회를 오는 입장에서 보면 죽전역과 신세계백화점 쪽 방향이 가장 무난하다. 대중교통으로 오는 자식이든 차를 몰고 오는 자식이든 이 축을 따라 움직이면 헤맬 일이 적다. 어르신을 낮 동안 맡아주는 시설이 이 동네에서 하는 역할도 여기에 있다. 언덕과 넓은 단지 때문에 혼자서는 하루의 이동 반경이 좁아지는 어르신에게, 집 밖으로 나올 이유와 통로를 만들어 주는 자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