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서 하루를 맡긴다는 것 — 수지죽전에서 보낸 사계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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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길
- 봄이 오면 광교산 자락부터 색이 바뀐다. 아침 공기가 물러지는 게 피부로 느껴지고, 그때쯤이면…
- 죽전과 수지 일대는 대단지 아파트가 촘촘하게 들어선 곳이다. 신도시로 조성된 동네답게 단지 안…
- 아침 차량은 단지 순서대로 돈다. 아파트가 몰려 있는 덕에 한 바퀴에 여러 분을 모실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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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광교산 자락부터 색이 바뀐다. 아침 공기가 물러지는 게 피부로 느껴지고, 그때쯤이면 어르신들 발걸음도 확실히 가벼워진다. 여름엔 해가 길어 저녁까지 바깥이 환하니 산책 시간을 조금 늦춰 잡는다. 한낮 더위를 피해 그늘진 길을 골라 걷는 게 요령이다. 가을은 이 동네가 제일 예쁠 때다. 법화산 쪽으로 단풍이 내려오기 시작하면 짧은 거리라도 밖에 나가 앉아 있다 오는 게 하루의 큰 몫이 된다. 겨울에는 길이 얼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다. 대신 볕 좋은 날을 골라 잠깐씩 나간다. 계절이 바뀌는 걸 몸으로 아는 분들이라, 창밖 풍경 하나에도 오늘이 며칠쯤인지 짚어내신다.
죽전과 수지 일대는 대단지 아파트가 촘촘하게 들어선 곳이다. 신도시로 조성된 동네답게 단지 안에 생활에 필요한 것이 웬만큼 갖춰져 있다. 그래서 자녀가 직장 따라 이 근처에 자리를 잡고, 부모님을 같은 단지나 옆 단지로 모셔온 경우가 꽤 많다. 아예 처음부터 함께 살아온 세대도 있다. 반대로 처인구 쪽 농촌형 지역에서 오래 사시다가 자녀 가까이로 옮겨오신 분들도 계신다. 그런 분들은 처음 얼마간 낯설어하신다. 앞뒤로 논밭이 보이던 집에서 고층 아파트로 옮겨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들과딸 수지죽전 센터에서는 그 적응 기간을 재촉하지 않는다. 용인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세대와 은퇴하신 세대가 한 동네에 섞여 사는 곳이라, 낮 시간에 어른만 홀로 계시는 집이 유독 많다. 그 빈 낮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결국 문제였다.
아침 차량은 단지 순서대로 돈다. 아파트가 몰려 있는 덕에 한 바퀴에 여러 분을 모실 수 있고, 그만큼 차 안에 오래 앉아 계시는 시간이 짧다. 이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단지 정문까지 나와 계시는 분도 있고, 동 앞까지 들어가야 하는 분도 있다. 걸음이 불편하신지, 그날 컨디션이 어떤지에 따라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저녁에 모셔다드릴 때는 퇴근 시간과 겹치는 구간을 피해 경로를 잡는다. 가족분들은 대개 주말에 오시는데, 같은 생활권 안이라 마음먹으면 잠깐 들르기가 어렵지 않다. 지방에 계신 자녀분이 명절에 맞춰 다녀가시는 경우도 있다. 오가는 길이 짧다는 건 결국 얼굴 보는 횟수로 돌아온다.
신분당선과 수인분당선이 지나가는 덕에 서울에서 내려오기가 수월하다. 부모님을 뵈러 오는 자녀분들이 지하철로 오시는 일이 많다. 용인경전철은 처인구 쪽을 잇는 노선이라, 그쪽에 연고가 있는 가족들이 더러 이용하신다. 차로 오실 때도 크게 막히는 구간은 없는 편이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이 멀지 않은 것도 가족들 입장에서는 안심되는 부분이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셔야 하는 분들은 그 일정에 맞춰 이용 시간을 조정한다. 용인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제일 먼저 묻는 게 바로 이 접근성 문제다.
이 동네는 평지와 언덕이 섞여 있다. 광교산과 법화산 자락이 도시를 감싸고 있어서 조금만 걸어 나가도 녹지가 나온다. 물길을 따라 난 길은 경사가 완만해서 어르신들 걷기에 좋다. 산 쪽으로 붙은 단지들은 아무래도 오르막이 있다. 그래서 산책 코스를 정할 때 그날 모인 분들 걸음 상태를 먼저 본다. 무리하게 언덕을 오르지는 않는다. 에버랜드가 있는 처인구 방향은 지형이 또 다르다. 도시가 산과 붙어 있다는 건 공기가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그게 바로 느껴진다.
용인은 경기 동남부의 주거도시다. 죽전과 수지는 계획해서 만든 신도시고, 처인구로 넘어가면 아직 농촌형 마을이 남아 있다. 한 도시 안에 성격이 다른 동네가 공존하는 셈이다. 신도시 쪽은 생활이 편하고 정돈되어 있지만, 그만큼 이웃과 얼굴을 익히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오래 사신 분들은 그 점을 아쉬워하신다. 그래서 용인 데이케어센터를 찾으실 때 시설보다 사람을 먼저 보시는 분이 많다.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다. 아들과딸 수지죽전 센터가 자리 잡은 자리도 결국 그런 동네다. 서울로 나가는 사람과 이곳에서 나이 드는 사람이 같은 아파트에 산다. 낮 동안 그 두 세대의 시간표를 이어주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