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에서 노인 주간보호센터를 찾는 가족에게, 이 동네 이야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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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교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이 동네 장보기가 서울 변두리나 옛 성남 구도심과는 사뭇 다르다는 …
- 판교테크노밸리의 유리 건물들만 떠올리면 이 일대가 온통 평평한 땅 같지만 실제로 걸어 보면 그…
- 판교는 계획해서 만든 신도시다. 구도심처럼 세월이 겹겹이 쌓인 동네가 아니라 도로와 단지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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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이 동네 장보기가 서울 변두리나 옛 성남 구도심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안다. 재래시장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흥정하는 풍경보다는, 판교역 주변과 백현동 일대의 큼직한 상업시설을 한 번에 들르는 방식이 몸에 배어 있다. 어르신들도 그렇다. 무릎이 예전 같지 않은 분들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보다 한 건물 안에서 필요한 걸 다 해결하고 싶어 한다. 판교역 근처 상업지구는 그런 점에서 편하다. 실내로 이어지는 동선이 많아 한여름 땡볕이나 한겨울 칼바람을 덜 맞는다. 반면 판교동이나 삼평동 안쪽 주거지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아파트 단지 상가나 생활권 안의 작은 가게들이 일상을 받쳐 주는 구조다. 매일 쓰는 물건은 단지 상가에서 사고, 큰 장은 자녀가 주말에 차를 대고 한꺼번에 봐 주는 집이 많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 혼자 보내는 낮 시간이 길어진다. 낮에 갈 곳이 있느냐 없느냐가 이 동네 노년의 하루를 크게 가른다.
판교테크노밸리의 유리 건물들만 떠올리면 이 일대가 온통 평평한 땅 같지만 실제로 걸어 보면 그렇지 않다. 판교는 산자락을 깎고 골짜기를 메워 만든 땅이라 완만한 오르내림이 곳곳에 남아 있다. 큰길은 넓고 반듯한데 주거지 안쪽으로 한 블록만 들어가면 슬며시 언덕이 시작되는 식이다. 젊은 사람은 눈치채지 못할 기울기가 여든 넘은 어르신에게는 숨이 차는 구간이 된다. 다행히 녹지는 넉넉하다. 하천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지고, 단지 사이사이 공원이 촘촘하게 박혀 있어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앉아 쉴 그늘을 찾을 수 있다. 아침이면 그 길에서 천천히 걷는 노인들을 흔히 본다. 다만 이런 산책은 날이 좋을 때 이야기다. 비 오는 날, 눈 쌓인 날, 폭염 경보가 뜬 날에는 공원이 아무리 가까워도 현관을 못 나선다. 계절을 타지 않고 갈 수 있는 실내 공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판교는 계획해서 만든 신도시다. 구도심처럼 세월이 겹겹이 쌓인 동네가 아니라 도로와 단지와 공원을 도면 위에서 먼저 그린 뒤 사람을 들인 땅이다. 여기에 판교테크노밸리라는 큰 일터가 붙어 있어 성격이 하나 더 얹혔다. 낮 시간의 인구가 젊은 쪽으로 크게 기운다는 점이다. 아침이면 출근 인파가 판교역으로 쏟아지고 저녁이 되어야 동네가 다시 채워진다. 이 구조가 노년의 일상에 만드는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골목마다 평상이 있고 오가며 참견해 주는 이웃이 있는 옛 동네와 달리, 계획도시의 낮은 조용하고 익명적이다. 관리는 잘 되고 길은 깨끗한데 사람의 눈길은 성기다. 자녀 세대가 직장 때문에 자리를 잡고 부모를 모셔 온 집이 적지 않은데, 그런 어르신일수록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아는 얼굴이 없다. 시설이 좋은 동네와 외롭지 않은 동네는 같은 말이 아니다. 판교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는 가족이 늘어난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깔려 있다.
이 동네의 길은 등원과 하원 차량이 다니기에 나쁘지 않은 편이다. 신도시라 간선도로 폭이 넉넉하고 단지 진출입로도 처음부터 차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아파트마다 지하주차장과 연결된 승하차 공간이 있어 비 오는 날에도 젖지 않고 차에 오르내리는 구조가 흔하다. 어르신에게는 이게 꽤 큰 차이다. 문제는 단지 밖으로 나온 뒤다. 판교동과 삼평동 일부 구간은 경사가 붙어 있어 겨울에 노면이 얼면 조심스러워진다. 골목이 좁아 차가 못 들어가는 곳은 드물지만, 언덕 위 저층 주택가는 큰 차가 돌려 나오기 까다로운 자리가 있다. 출퇴근 시간대에 테크노밸리 방면으로 차가 몰리는 것도 감안할 대목이다. 같은 거리라도 아침 여덟 시 반과 열 시의 체감이 전혀 다르다. 면회를 오는 가족 입장에서는 판교역 방면에서 접근하는 쪽이 대체로 수월하다. 대중교통으로 와도 되고 차를 가져와도 세울 데가 있다. 인근 성남 분당 권역에 자리한 아들과딸 분당판교 센터처럼 판교 생활권 안팎에 있는 곳을 두고 가족들이 저울질하는 것도 결국 이 동선 문제 때문이다.
오가는 이야기의 중심은 역시 판교역이다. 이 역 하나로 서울 강남 방면과 분당 안쪽이 모두 이어진다. 지방에 사는 자녀가 부모를 보러 올 때도 판교역까지 오면 나머지는 짧다. 역에서 판교동이나 삼평동 방면으로는 버스와 택시가 부지런히 다니고, 백현동 쪽은 상업지구와 붙어 있어 걸어서 닿는 구간도 있다. 도로 사정도 나쁘지 않다. 판교는 애초에 광역 교통을 염두에 두고 조성된 곳이라 나들목 접근이 수월한 편이고, 그래서 다른 시에 사는 형제가 주말에 차를 몰고 오기에 부담이 적다. 이 접근성은 노년의 돌봄 문제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부모를 모시는 형제가 한 명에게만 몰리지 않고 번갈아 들여다볼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판교 데이케어센터를 알아볼 때 가족들이 위치를 그렇게까지 따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자주 못 오는 거리면 결국 한 사람이 다 짊어지게 된다.
주거 형태로 보면 판교는 대단지 아파트가 뼈대를 이룬다. 단지가 크고 관리가 체계적이라 어르신이 지내기에 물리적으로는 무난하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문턱이 낮고 단지 안에서 앉아 쉴 자리를 찾기 쉽다. 그 사이사이 판교동 일대에는 저층 주택과 타운하우스 성격의 집들도 섞여 있다. 마당이 있어 좋다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해마다 힘에 부친다는 분들도 있다. 정주 양상은 크게 두 갈래다. 판교가 조성될 때 들어와 그대로 나이 든 분들이 한 축이고, 자녀를 따라 뒤늦게 옮겨 온 분들이 다른 한 축이다. 앞쪽은 동네 지리에 밝지만 함께 늙어 온 이웃들도 하나둘 줄어든다. 뒤쪽은 집은 좋은데 낮이 유독 길다. 어느 쪽이든 결국 같은 질문에 닿는다. 낮 동안 어디서 누구와 지내느냐다. 집을 옮기지 않고 살던 동네에 머무르면서 낮 시간만 사람들 사이에 있게 하는 방식이 요즘 가족들이 가장 많이 택하는 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