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동 어르신 하루를 여는 동네 이야기 — 오리역과 탄천 사이에서

한눈에 보기
오시는 길
- 구미동은 분당 최남단에 앉은 동네다. 땅이 험하지 않다. 탄천이 북쪽으로 흐르고 그 물길에 동…
- 평지가 넓다는 건 어르신의 하루 이동에서 꽤 큰 차이를 만든다. 대단지 위주로 조성된 동네라 …
- 장을 보는 풍경은 대단지 동네답게 단지 상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무지개마을이나 까치마을 같은…
오늘의 식사
프로그램
이용 안내
구미동은 분당 최남단에 앉은 동네다. 땅이 험하지 않다. 탄천이 북쪽으로 흐르고 그 물길에 동막천이 흘러들어 합류하는 자리가 이 동네의 낮은 배꼽 노릇을 한다. 물가는 평평하고 넓다. 걷다 보면 발이 편하다는 걸 몸이 먼저 안다. 다만 물가에서 아파트 단지 쪽으로 몸을 돌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무지개마을과 까치마을 같은 대단지는 물길보다 살짝 높은 자리에 앉아 있어서,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완만한 오르막이 붙는 구간이 있다. 급한 비탈은 아니다. 그래도 무릎이 예전 같지 않은 어르신에게는 그 완만함조차 하루의 무게가 된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머내 경계가 나온다. 분당이 끝나고 다른 생활권이 시작되는 자리라, 이 동네 사람들은 예전부터 그 경계를 기준으로 "여기까지가 우리 동네"라는 감각을 갖고 살아왔다. 물과 평지와 대단지, 이 세 가지가 구미동의 지형을 거의 다 설명한다.
평지가 넓다는 건 어르신의 하루 이동에서 꽤 큰 차이를 만든다. 대단지 위주로 조성된 동네라 단지 진입로가 처음부터 차가 드나들도록 넓게 나 있다. 좁은 골목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구도심형 길이 아니다. 아침에 어르신을 태우고 나가는 차량이든, 오후에 돌아오는 차량이든 단지 앞까지 무리 없이 닿는 구조라는 뜻이다. 구미동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는 가족들이 동선을 따질 때 이 점을 먼저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단지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 동 입구까지 오르막이 붙는 곳도 있고, 주차장을 지나 한참 걸어야 현관이 나오는 동도 있다. 면회하러 오는 가족 입장에서는 오리역과 미금역 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방향이 가장 무난하다. 지하철에서 내려 큰길을 따라 들어오면 길을 헤맬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방에 사는 자녀가 주말에 올라올 때도 이 방향이 마음 편하다고들 한다.
장을 보는 풍경은 대단지 동네답게 단지 상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무지개마을이나 까치마을 같은 큰 단지 아래로는 생활에 필요한 가게들이 층층이 들어서 있어서, 어르신이 멀리 나가지 않고도 하루치 반찬거리를 해결한다. 걸어서 오갈 만한 거리에 필요한 것이 모여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복이다. 오리역과 미금역 주변으로 나가면 상권의 결이 달라진다. 역세권 특유의 밀도가 붙어서, 자녀가 부모님을 모시고 나가 식사를 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기에 적당하다. 어르신들끼리 아침에 상가 앞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이 동네에서는 흔한 장면이다. 낯익은 얼굴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는다. 그런 반복이 있는 동네는 어르신이 혼자 있어도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교통은 이 동네의 가장 큰 자산이다. 수인분당선 오리역과 미금역이 가까워서, 전철 한 번이면 분당 안쪽 어디로든 닿는다. 오리역은 오랫동안 분당 남쪽 끝을 지키는 역이었고, 그래서 이 일대 사람들에게는 그냥 역이 아니라 동네의 기준점 같은 곳이다. 병원 다니는 일도 여기서는 큰 짐이 아니다. 분당서울대병원 방면으로 오가기가 어렵지 않아서, 정기 진료를 다니는 어르신과 그 보호자에게는 이 점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진료 일정과 낮 시간 돌봄 일정을 어떻게 맞출지 고민하는 가족들이 구미동 데이케어센터 같은 시설의 위치를 따질 때도 결국 병원 가는 길이 얼마나 편한지를 함께 본다. 버스로 움직이는 어르신도 많다. 지하철 계단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면 오히려 버스가 더 편해지기 때문이다.
구미동은 신도시 택지지구다. 계획해서 만든 동네라는 뜻이고, 실제로 살아보면 그 차이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길이 반듯하고 단지와 단지 사이 간격이 넉넉하다. 오래된 구도심처럼 골목이 얽히고설켜 방향을 잃는 일이 없다. 무지개마을과 까치마을 같은 대단지가 동네의 뼈대를 이루면서, 분당 초기부터 이곳에 들어와 삼십 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산 세대가 두텁게 남아 있다. 그때 이사 온 부부가 이제는 돌봄을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었다. 같은 단지에서 함께 늙어온 이웃이 있고, 앞 동 누구네 어머니가 어디를 다니는지 서로 아는 사이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는 낮 시간 돌봄을 알아볼 때 정보가 발보다 먼저 도착한다. 익숙한 동네를 떠나지 않고 낮 동안 돌봄을 받는 것, 그게 이 나이대 어르신들이 가장 원하는 조건이다. 주간보호센터가 지역에서 맡는 역할도 결국 거기에 있다. 삶터를 옮기지 않은 채로 낮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다.
계절이 오는 걸 이 동네에서는 물길이 먼저 알려준다. 봄이면 탄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어르신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물가가 평평해서 유모차든 보행기든 밀고 걷기에 무리가 없고, 동막천이 합쳐지는 언저리는 물소리가 제법 시원해 여름 아침에도 걸을 만하다. 한여름 낮은 물론 피해야 한다. 대신 해 지고 바람이 도는 저녁 무렵이면 다시 사람이 모인다. 가을에는 천변 풀빛이 누렇게 변하는 걸 보러 일부러 멀리 도는 어르신도 있다. 겨울이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가는 바람길이라 체감온도가 뚝 떨어지고, 단지로 올라가는 완만한 오르막이 눈이라도 오면 만만치 않아진다. 그 시기에 어르신들의 활동 반경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낮 동안 따뜻한 실내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가 이 동네에서 특히 소중해지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면 천변에는 어김없이 같은 얼굴들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