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계획된 길 위에서 하루를 보내는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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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단은 광주 북구 안에서도 성격이 뚜렷한 동네다. 오래된 골목이 자연스럽게 늘어난 구도심과 달…
- 지형으로 보면 첨단은 걷기에 순한 편이다. 계획적으로 조성된 지구답게 땅이 대체로 평탄하고, …
- 장보기 풍경은 아파트 단지 생활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단지마다 상가가 붙어 있고, 그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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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은 광주 북구 안에서도 성격이 뚜렷한 동네다. 오래된 골목이 자연스럽게 늘어난 구도심과 달리, 처음부터 도면을 그려놓고 만든 계획 신도시에 가깝다. 광주과학기술원과 연구단지가 들어서면서 사람이 모였고, 그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 동네에 사는 어르신들 중에는 자녀를 따라 뒤늦게 이사 온 분이 적지 않다. 평생 살던 시골집이나 옛 동네를 떠나 아들딸 가까이로 옮겨온 경우다. 길이 반듯하고 단지 안이 깔끔한 것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그만큼 오래 알고 지낸 이웃이 없다는 점은 어르신에게 꽤 크게 다가온다. 아침에 마주쳐 인사할 사람이 없는 날들이 이어지면 집 안에만 계시게 되고, 가족은 그 점을 가장 걱정한다. 첨단 주간보호센터 같은 곳을 찾는 가족이 이 동네에 유독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설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낮 동안 어르신이 사람을 만날 자리가 필요해서다.
지형으로 보면 첨단은 걷기에 순한 편이다. 계획적으로 조성된 지구답게 땅이 대체로 평탄하고, 급한 고개나 비탈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무릎이 편치 않은 어르신에게 이건 생각보다 큰 조건이다. 단지에서 나와 큰길까지 나가는 동안 숨이 차게 만드는 오르막이 별로 없다. 동네 서쪽으로는 영산강이 흐른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시야가 트여 있어서, 날이 좋을 때 가족과 함께 천천히 걷기에 좋다. 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 저녁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국립광주과학관과 광주비엔날레전시관 주변으로도 넓게 비워둔 공간이 있어 답답한 느낌이 덜하다. 오래된 동네처럼 담벼락이 빽빽하게 붙어 있지 않으니, 지팡이를 짚고 나와도 부딪힐 일이 적다.
장보기 풍경은 아파트 단지 생활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단지마다 상가가 붙어 있고, 그 안에서 웬만한 것은 해결된다. 재래시장을 걸어 다니며 흥정하던 기억을 가진 어르신에게는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신 길이 넓고 정돈되어 있어서 장바구니를 끌고 다니기가 수월하다. 첨단대로 주변으로 상업 시설이 모여 있어, 필요한 물건을 사러 멀리까지 나갈 일은 많지 않다. 젊은 세대가 많은 동네라 저녁 시간의 상가는 제법 활기가 있다. 어르신 혼자 나서기보다 자녀와 함께 나오는 장보기가 자연스러운 구조다. 그래서 주중 낮 시간에 어르신이 혼자 남는 시간대와,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저녁·주말 시간대가 뚜렷하게 갈린다.
가족의 동선을 놓고 보면 첨단은 꽤 유리한 자리에 있다. 연구단지와 직장이 동네 안이나 바로 옆에 있는 경우가 많아, 출근길에 어르신을 들여다보고 나가는 일이 무리가 아니다. 첨단대로를 축으로 남북으로 움직이면 동네 대부분을 지난다. 퇴근길에 방향을 크게 틀지 않고 들를 수 있는 위치라는 뜻이다. 담당 센터가 있는 광주 북구 일곡 방향으로도 시내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어, 북구 안에서 움직이는 가족에게는 낯선 거리가 아니다. 주말에 강변이나 과학관 쪽으로 나들이를 다녀오면서 어르신을 모시고 나오기에도 동선이 겹친다. 멀리 돌아가야 하는 부담이 적다는 점은, 매일 반복되는 일에서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
오가는 길 자체도 막힘이 적다. 첨단대로가 동네의 큰 줄기 역할을 하고, 산월나들목을 통해 고속도로로 빠지는 길이 이어진다. 타지에 사는 자녀가 주말에 내려와 부모님을 뵙고 다시 올라가야 할 때, 이 나들목이 있고 없고는 체감이 다르다. 동네 안에서는 시내버스가 아파트 단지와 큰길을 따라 다닌다. 광주과학기술원과 국립광주과학관, 광주비엔날레전시관처럼 사람이 모이는 곳들이 있어 노선이 지나는 축도 비교적 분명한 편이다. 다만 어르신 혼자 버스를 갈아타며 먼 거리를 다니는 일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상 이동은 걷는 거리 안에서, 또는 가족의 차로 이루어진다.
이런 길의 생김새는 어르신의 하루 이동에 그대로 영향을 준다. 첨단은 도로 폭이 넉넉하고 단지 진입로가 반듯해서, 차량이 드나들며 어르신을 태우고 내리기에 까다로운 지점이 적다. 좁은 골목을 후진으로 빠져나와야 하거나, 급경사 앞에서 차를 세워두고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잘 생기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 차량이 오가는 시간대에도 큰길로 곧장 나갈 수 있어 이동 시간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조건 덕분에 첨단 데이케어센터를 비롯한 지역의 주간보호 시설들은, 아파트 단지가 모여 있는 동네에서 어르신의 낮 시간을 받아주는 자리로 기능한다. 가족 입장에서도 면회하러 오는 길이 어렵지 않다. 첨단대로에서 단지 쪽으로 들어오는 방향만 잡으면 되고, 주차 공간이 비교적 확보된 신흥 주거지라는 점도 부담을 덜어준다. 반듯한 길이 주는 편안함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오가야 하는 어르신과 가족에게 오래 쌓이는 종류의 이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