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동에서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는 가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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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암동은 한 가지 얼굴로 설명되지 않는 동네다. 운암주공 재건축 일대를 중심으로 대단지 아파트…
- 지형을 보면 운암동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짐작이 간다. 북쪽으로 운암산이 등을 대고 있고, 그…
- 문제는 이 지형이 하루의 이동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이다. 운암산 자락으로 붙은 주택가 골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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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동은 한 가지 얼굴로 설명되지 않는 동네다. 운암주공 재건축 일대를 중심으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흐름이 있고, 그 바깥으로는 오래된 저층 주택이 여전히 골목을 이루고 있다. 아파트 단지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마당 딸린 단층집에서 사십 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어르신도 계신다.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인근으로 옮겨 지내다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운암동의 어르신 정주 양상은 '새 아파트에 사는 노년'과 '옛 주택에 남은 노년'이 한 동네 안에 겹쳐 있는 모습에 가깝다. 두 쪽의 생활 반경은 꽤 다르다. 단지 안에 사시는 분들은 상가와 경로당이 걸어서 닿는 거리에 있어 하루가 단지 안에서 완결되는 편이다. 반면 골목 주택에 사시는 분들은 운암시장 쪽으로 나가야 사람을 만나고 장을 본다. 가족이 어느 쪽에 계신 어르신을 돌보고 있느냐에 따라, 하루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가 달라진다.
지형을 보면 운암동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짐작이 간다. 북쪽으로 운암산이 등을 대고 있고, 그 아래로 마을이 앉았다. 산자락에 가까울수록 땅이 들리고, 광주천 상류와 서방천이 흐르는 쪽으로 갈수록 땅이 낮아지며 평평해진다. 그러니까 이 동네는 통째로 평지도 아니고 통째로 언덕도 아니다. 산 쪽 주택가는 걸어 올라가면 숨이 차는 경사가 분명히 있다. 물길을 낀 아래쪽은 평탄해서 유모차든 보행기든 밀고 다니기가 한결 수월하다. 녹지는 부족하지 않은 편이다. 운암산이 있고 하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있어서, 멀리 나가지 않아도 흙과 물을 볼 수 있다. 여기에 광주시립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전시관이 자리해 있어 동네 한쪽에는 널찍하게 트인 공간이 있다. 어르신들이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운 동네는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 지형이 하루의 이동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이다. 운암산 자락으로 붙은 주택가 골목은 폭이 넉넉하지 않고 경사도 있다. 차가 들어오더라도 돌려 나가기가 쉽지 않은 구간이 있다. 그런 골목에 사시는 어르신은 큰길까지 몇십 미터를 걸어 나오시는 편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는데, 그 몇십 미터가 겨울에는 만만치 않다. 반대로 대단지 아파트 쪽은 사정이 다르다. 단지 진입로가 넓고 차가 서고 돌아 나가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차량의 흐름이 비교적 단순하다. 운암동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는 가족이라면, 어르신 집 앞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부터 살펴보는 게 순서다. 면회를 오는 방향도 생각해 둘 만하다. 동림IC 쪽에서 들어오면 시내를 거치지 않고 접근할 수 있어, 다른 지역에 사는 자녀가 주말에 다녀가기에는 그 방향이 편하다. 시내 쪽에서 오는 경우에는 운암시장 부근의 차량 통행을 감안해야 한다. 장이 서는 시간대에는 그 일대가 확실히 붐빈다.
성격으로 따지면 운암동은 구도심에 속한다. 새로 계획해서 만든 택지지구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채워진 동네다. 그 차이는 사는 사람에게 꽤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길이 반듯하게 격자로 나 있지 않고, 같은 동네 안에서도 건물 나이가 제각각이다. 대신 얻는 것이 있다. 운암시장처럼 오래 자리를 지킨 곳이 있어 물건값을 흥정하는 말이 오가고, 단골이라는 말이 아직 통한다. 어르신들에게는 이런 점이 생각보다 크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 거리를 걷는 것과, 아무도 모르는 새 동네를 걷는 것은 다르다. 재건축으로 동네 한쪽이 새 얼굴을 갖게 되면서 신구가 섞이고 있지만, 바탕에 깔린 정서는 여전히 구도심의 그것이다. 그래서 운암동 데이케어센터를 찾는 가족들 사이에서는 어르신이 살던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을 선호하는 흐름이 있다. 익숙한 길과 익숙한 얼굴이 남아 있는 자리에서 하루를 보내는 편이 낫다고들 여기기 때문이다. 다만 운암동 안에서 원하는 자리를 찾지 못하면 아들과딸 광주일곡 센터처럼 같은 북구 안의 다른 동네까지 넓혀 알아보는 가족도 있다.
오가는 길은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동림IC가 가까워서 시 외곽으로 빠져나가거나 바깥에서 들어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 광주 안의 다른 구에 사는 자녀가 부모님을 뵈러 오기에 부담이 덜한 위치라는 말이다. 동네 안쪽 이동은 버스에 기대는 어르신이 많다. 운암시장 앞은 사람도 차도 모이는 지점이라 정류장을 기준으로 하루 동선을 잡는 분들이 계신다. 광주시립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전시관이 있는 쪽은 도로가 넓게 나 있어 차로 접근하기가 수월하다. 큰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는 그 일대가 평소보다 붐빈다는 점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다. 걸어서 다니는 어르신이라면 물길을 따라 난 길을 이용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신호를 건널 일이 적어서다.
계절은 이 동네에서 꽤 또렷하게 드러난다. 봄이면 운암산 아래쪽부터 색이 오르기 시작하고, 서방천과 광주천 상류를 따라 걷는 어르신이 부쩍 늘어난다. 아침에 나가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 하루의 시작인 분들이 계신다. 여름에는 반대로 낮 시간을 피한다. 물가라도 그늘이 이어지지 않는 구간이 있어서, 해가 누그러진 저녁 무렵에야 사람이 나온다. 가을이 가장 좋은 철이다. 운암산 쪽으로 단풍이 들고 미술관 앞 넓은 마당에도 바람이 선선하게 지나가, 멀리 가지 않아도 앉아 있을 자리가 생긴다. 겨울은 조심할 계절이다. 산자락 골목은 응달이 지면 얼어붙고, 하천변은 바람이 그대로 지나가 체감온도가 낮다. 그래서 이 무렵에는 바깥 활동이 줄고 실내에서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낮 동안 어르신이 안전하게 머물며 사람과 어울릴 자리가 동네 안에 있느냐는 문제가, 겨울마다 가족들 사이에서 다시 이야기되는 이유다.






